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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렌펑크 2077? 당연히 말이 되죠
    CRITIQUE 2021. 7. 14. 04:12

     

    2020년의 최고 기대작, CDPR의 게임 '사이버펑크 2077'은 망했다.

    아니 매출적으론 망하지 않았다. 그 해 가장 많이 팔린 게임중 하나였고 여전히 잘팔리는 중이다. 다만 게임의 패러다임을 바꿀 우주 명작의 탄생을 고대했던 게임팬들에게 있어 10%도 충족이 안되는 지극히 범작에 불과한 작품인데다 출시 초기엔 지나치게 많은 버그 때문에 각종 조롱섞인 밈의 소재로 전락해 버렸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꼽자면 능력에 비해 너무나 방대한 세계를 그리려고 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전작이자 최고 히트작 '위쳐3'를 플레이해 보면 알 수 있듯 CDPR의 최고 강점은 섬세하고 빼어난 스토리텔링과 연출, 편집증적 디테일에 있다. 하지만 그들이 사펑을 예고하면서 던진 키워드는 '오픈월드'였다. 당시엔 적당한 단어가 없어서 오픈월드라는 단어로 말하긴 했지만 지금 기준에서 그들의 의도를 파악해보자면 그들은 또 하나의 리얼 월드, '메타버스'를 만들려고 했다. 

     

     

    즉 모든 NPC가 살아숨쉬는 것처럼 각자의 일상을 살고 플레이어의 행동에 반응하며 그들의 인생에 개입해 사이드 스토리가 전개되는, 현실의 반응과 다를바 없는 거의 완벽한 가상 세계를 공언했고 게이머들은 이게 그 특이점인가 뭔가하는 그거냐 라며 들떠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런 식의 세계를 창조한다는 건 현존하는 기술력과 인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걸 증명한 꼴이 되었지만 2020년 초만 해도, 그래도 CDPR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출시전 릴리즈한 한 개의 트레일러 영상을 보며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직감했었다.

     

    이것이 2077년 스타일

     

    '이것이 2077년 스타일'이라는 제목의 이 트레일러는 사이버펑크 2077 게임내 세계관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스타일들에 대해서 설명한 예고편이었다. 직업적 특성상 매우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도시 내 모든 광고판과 CF들까지도 일일이 전문가들을 고용해 자체 제작할 정도로 디테일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이버틱한 펑크 패션이라 한다면 수많은 패션 디자이너들이 각자만의 청사진을 화려하게 제시할 정도로 패션계에서 인기있는 소재였기 때문에 괜찮은 디자인 팀만 꾸렸다면 트렌디하면서도 과연 2077년에 입을 거 같다라고 수긍할만한, 파격적인 디자인들이 쏟아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몇달 전에 발매했었던 코지마 히데오의 게임 '데스 스트랜딩'에선 ACRONYM의 디자이너 에롤슨 휴가 몇가지 디자인 작업에 참여해 좋은 결과물을 보여주기도 했으니 말이다(포스트 아포칼립스적인 게임 특성상 다양한 의상이 등장하진 않아서 아쉬움이 컸다). 

     

     

    하지만 트레일러에서 보여준 스타일들은, 적어도 수천번의 패션 컬렉션을 지겹도록 봐온 내 입장에선 좀 식상한 디자인들이었다. 단언컨데 이는 패션 디자이너의 시각이라기 보단 게임 캐릭터 디자이너가 상상할 법한 미래의 패션이었다. 이는 직업을 폄훼하는 게 아니라 서로 간의 리서치하는 분야가 다름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캐릭터 디자이너나 영화 의상 디자이너들은 작품 안의 캐릭터가 돋보이는데 포커스를 맞추기 때문에 의상이나 자동차, 인테리어 등을 디자인함에 있어서 이미 존재하는 아카이브를 벗어날 수 없다. 예를 들어 2077년에 사는 망나니 부잣집 도련님을 디자인한다고 생각해보자. 캐릭터 디자이너 입장에선 아무리 먼 미래의 모습을 상상한 것이지만 2021년을 사는 지금 사람들이 갖고 있는 망나니 부잣집 도련님의 이미지를 기초로 해서, 지금 사람들이 갖고 있는 '미래인'의 모습을 믹싱하는 방식으로 디자인하기 마련이다. 비싸보이는 수트를 입었지만 왠지 형광색같이 튀는 컬러로 악세사리도 주렁주렁 달면서 목에는 여우털 목도리를 두르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아무도 모를 일이다. 2077년의 트렌드는 19세기에 유행하던 아르누보 스타일의 패브릭을 크로스 섹슈얼적으로 입는 것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사실 2077년쯤 되는 미래의 일을 상상하라고 하는 건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적어도 지금까지 본적없는 파격을 제시하는 게 더 그럴듯 해보인다. 그리고 이런 일에 적격인 건 역시 패션 디자이너들이다. 이들의 주업은 1년 정도 앞을 내다보고 그때쯤 붐을 일으킬만한 스타일을 제시하는 것이지만 50년쯤 앞을 내다보라고 하면 더 신나서 날뛸만한 디자이너들은 세상에 널렸으니 말이다. 

     

     

    사이버펑크쯤 되는 화제작이라면 오프화이트나 엠부쉬, 마린 세레같은 핫한 패션 디자이너들과 충분히 콜라보를 진행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 훨씬 세련된  결과물을 얻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디자인은 매우 폐쇄적이고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었다. 그 불안감은 현실이 되었다. 게임 내의 모든 의상, 자동차, 건물, 인테리어, 심지어는 광고판과 TV 속 프로그램까지 제작사 내의 인력으로(물론 이런 디자인에 전담팀을 붙이는 것도 최초긴 하지만) 감당할 수 있다고 믿었을 만큼 주먹구구식으로 인력배치를 하고 자원을 낭비한 사이버펑크 2077은 거대한 스케일을 감당하지못한 망작으로 남게 되었다. 

     

     

    이런 공상을 하고 있을 때쯤 발렌시아가의 2021년 가을 컬렉션의 캠페인 영상이 올라왔다. 

     

     

    Balenciaga Fall 21 Campaign

     

     

    근미래를 배경으로 했던 게임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의 제작사 퀀틱드림이 제작한 영상이다보니 자연스럽게 사펑 생각이 난다. 그래 이걸 2077년 패션이라고 하는게 더 자연스럽지 않나? 물론 이번 컬렉션은 전형적인 뎀나의 발렌시아가 스타일에 '이번 시즌 컨셉은 게임이에요'라고 말하는 듯한 중세 갑옷들이 뒤섞인, 약간은 1차원적인 디자인 결과물이긴 한데 뭔가 기본기적인 면에서 사펑 내의 디자인하고는 레벨이 다르다는게 느껴진다. 뎀나가 정말 각잡고 사펑의 의상 디자인을 했다면.. 아니 뎀나 혼자가 아니라 특정 스타일은 뎀나가 하고 다른 스타일은 매튜 윌리엄스(지방시, 알릭스의 디렉터)가 하고, 어떤 스타일은 버질 아블로(오프화이트, 루이뷔통 맨즈의 디렉터)가 했다면.. 아니 하는 김에 자동차 디자인은 포르쉐, 람보르기니, 부가티가 갖고 있는 컨셉 디자인들 중 몇개 좀 풀었었더라면.. 아니 더 하는 김에 게임 내 건축도 자하하디드나 프랭크 게리의 아카이브에서 몇개 가져왔다면...

     

     

    몇년전까지만 해도 말도 안되는 이야기일 수 있었겠지만 10대들이 주로 이용하는 제페토같은 플랫폼에도 구찌같이 탑급 럭셔리 브랜드가 참여하는 이 메타버스 광풍의 시대라면 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안타깝게도 사이버펑크 2077이란 게임은 이런 흐름을 타기엔 이미 물건너 갔지만 우리에겐 하나의 희망이 더 남아있다. 바로 GTA6. 누적 판매량 1억 4천만장을 넘긴 초우주명작 GTA5의 후속작이자 온라인 게임으로서도 이미 입지를 다져놓은 상태기 때문에 발매만 된다면 단숨에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발돋움할 것은 거의 확정적이다. 게다가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사펑과는 달리 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게임의 주제 역시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 럭셔리 라이프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그 어떤 게임보다 럭셔리 브랜드가 개입될 여지는 충분하다. 브랜드는 게임을 플랫폼 삼아 컨셉 디자인이나 브랜드 이미지를 홍보하는 장으로 활용할 수 있으니 좋고, 제작사 입장에서도 리얼리티를 높일 수 있어 좋으니 현존하는 거의 모든 럭셔리 브랜드, 슈퍼카 브랜드가 다 참여할 것이다(슈퍼카는 정말 필수다. 제목부터가 위대한 자동차 도둑 아닌가?). 심지어 스페이스 X의 로켓도 구매해 우주로 날아가는 것도 가능하니 이렇게 신나는 마켓팅 플랫폼은 없을 것이다. 아직까지 실체가 불분명한 메타버스의 세상은 GTA6가 발매되는 2023년(물론 미정)을 기점으로 펼쳐질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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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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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의 시각으로 세상을 연구합니다